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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집] 대답 없는 날들을 위하여 대답 없는 날들을 위하여 황지우 1 새벽, 인양선이 잠든 우리들의 고막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지친 해로(海路)를 뒤로 끌고 천천히, 길게 자기고백(自己告白)을 하는 뱃고동 소리 우리들 중 누가 이 저음(低音)의 깊은 밑바닥으로 잠수하려 할 것인지 잠결인 듯 심해(深海)의 술병에 목놓은 바람 소리 지나간다 목포(木浦)가 곧 물에 잠기리라 명년 초봄 평택이북(平澤以北)에 밤꽃이 피고 성내(城內)에 피가 흐르리라 어두운 땅에서 사람들이 이를 갈며 울리라 탈수(脫水)한 수평선에 흰 새들이 빠져들고 있었다 끼룩거리는 찢긴 벽보들, 갈보들 그들은 이미 죽은 시대를 시간(屍姦)하고 우리들 중 한 사람을 수장(水葬)한 수평선은 다시 물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오늘은 전국적으로 흐리고 영동(嶺東) 산간 지방에 비 2 갈 봄 .. 더보기
세월호 참사 보도, 보도 참사 언론은 세월호 참사 앞에 한없이 무능했다. “다시는 이와 같은 참사가 반복되지 않는 것.”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인양하자고 부르짖는 이들의 한결같은 외침이다. 이와 같은 간절한 바람이 모여, 지난해 12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청문회가 이뤄졌다. 하지만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려는 질문에 구조 책임자들은 짜기라도 한 듯, 모르쇠로 일관했다. 참사 당시 구조에 참여했던 해경 박상욱 경장은 구조 상황을 설명하며 “내려가랬는데 여학생들이 철이 없었는지 내려가지 않았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언까지 난무했다. 이에 참사에서 목숨을 걸고 20여명의 학생들을 구해 ‘세월호 의인’이라 불리는 김동수 씨는 “너무하는 것 아니냐”며 자해를 시도했다. 세월호 보도에 있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의 보도 참사를 낳고, ‘기레기’라는.. 더보기
[세월호 참사 1주년 추모 기획] 잊지 않겠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무려 304명이 진도 앞바다에 수장되었다.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었다. 세월호 참사는 승객의 안전보다 이익을 우선한 무리한 선박운항, 선장과 선원의 무책임 그리고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무능한 정부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은 5월 16일 청와대에서 세월호 사고 가족대책위 대표단 17명과 면담을 가지며 이렇게 말했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로부터 약 1년의 시간이 흐른 오늘, ‘근본부터 잘못된 것’은 바로잡혔을까? 애초에 세월호는 바다로 나와서는 안되는 위험한 배였다. 배가 안전하다고 국가로부터 인정받고 바다로 나오려면 해양수산부(이하 해수부), 한국선급, 해경, 해운조합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세월호는 이 과정에.. 더보기
[비극의 마무리] 세월호, 애도를 마무리하기 위하여 조선은 근대라는 역사의 열차에 오른 마지막 탑승객이었다. 달리 말해 가장 오랫동안 중세의 질서를 따른 국가 중 하나였다. 천 년의 세월동안 조선에서는 조정과 양반의 성리학 해석에 근거한 정치가 나라를 다스렸다. 유학의 근본기치인 천(天)을 받드는 것이 곧 통치였으며, 다만 천의 실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른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주리론과 주기론의 갈등으로 요약되는 이 대립은 역설적으로 천의 지위를 우주의 근원으로서 결코 의심될 수 없는 확고한 진리로 공고히 자리 잡게 했다. 천의 해석은 오직 한문을 구사할 수 있는 조정과 양반의 권능이었다.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 그는 조선의 중세적 질서에 구멍을 낸 최초의 인물이다. 최제우는 양반들만을 위한 천에 대항해 ‘한울님’이라는 인격신을 도입했다. 그는 모..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