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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호 - 111호/INSIDE CAMPUS

등록금 속 틀린 글자 찾기: 기성회비



 등록금 납입고지서를 출력했다. 수업료는 대략 40만원인데 기성회비는 무려 195만원이었다. 당황스러웠다. ‘내가 여태껏 수업료의 5배 가까운 돈을 기성회비로 냈다니...’ 기성회비는 대체 뭘까? 


 본래 기성회비는 자발적인 후원금으로 시작했다. 해방 직후 빈약한 국가 예산 때문에 국가가 대학에 투자를 못하자 지역 유지, 상공인,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대학 후원회가 발족되었다. 이 단체는 1963년 문교부장관 훈령에 따라 정식으로 설립되어 오늘날까지 ‘기성회’라는 이름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기성회비는 자발적인 후원금이 아니라 강제적인 징수금이 되어 등록금 납입고지서를 받아든 학생들이 당황했던 것이다. <효원>이 부산대학교 대학생 11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부산대학교 기성회비 징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에 부정적인 답변이 57%로 긍정적인 답변보다 2배 많았다. 

 


  사실상 국립대학의 ‘기성회비’에 대한 논란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가까운 예로 부산대학교 총학생회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기성회비 반환 소송을 3차에 걸쳐 제기한 바 있다. 논란의 쟁점은 ‘기성회비의 법적 근거가 있는가?’와 ‘국가가 국립대 설립과 운영을 책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학생에게 그 짐을 떠넘기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것이다. 먼저, 기성회비의 법적 근거부터 따져보자. 


Part1. 징수의 문제


기성회비의 법적 근거? 근본 없는 기성회비 


  현행 고등교육법에 따르면 「대학 등록금에 관한 규칙」에서 수업료와 입학금은 명시하고 있지만 기성회비에 대한 언급은 없다. 기성회비는 별도로 교육부 훈령인 ‘국립대학 비국고회계 관리규정’과 대학별 기성회 규약의 적용을 받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2010년 11월 15일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과 국공립대 학생회가 기성회비 1차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2012년 1월 서울중앙지법은 “학생들이 청구한 대로 1인당 10만원의 기성회비를 반환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기성회비는 법적근거가 없는 부당이득이며, 법률상 등록금과 성격이나 취지가 다르므로 고등교육법과 규칙, 훈령으로는 학생들에게 납부를 강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기성회비 납부는 기성회 회원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이며, 회원가입 의사를 표시·승인 한 적이 없는 학생들은 납부할 의무가 없다고 판결했다. 그렇다면 국립대학이 법적근거가 없는 기성회비를 징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법으로 기성회비를 징수하는 이유? 무책임한 정부! 


 부산대학교 기성회비 운영 주체는 명목상으로 기성회장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운영은 총장이 맡고 있다. 보다 실질적으로는 대학 본부가 정부 지원 부족분과 주요 사업의 예산을 조사하고 예산안을 편성한 후에 기성회비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지원이 충분하다면 기성회비를 징수하고 기성회회계를 별도로 운영할 이유가 없다. 

 먼저, 정부가 고등교육단계에 공교육비를 얼마나 부담하는지 OECD 기준으로 비교해봤다. OECD 국가들이 고등교육단계 공교육비의 70%를 정부가 부담하는 반면에, 우리나라는 27%만 정부가 부담한다.



 다음으로, 국내에서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의 지원금이 어떻게 배분되는지 비교해봤다. 아래의 자료는 국립대에만 지원하고 있는 경상운영비(인건비와 기본경비 등 경직성 경비)를 제외한 2013년 대학별 고등교육재원 지원 현황이다. 정부의 고등교육재원 지원금은 서울대(국립대학법인)를 비롯한 주요 사립대에 집중되어 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가 상위 10개 대학 전체 지원금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  


 그 결과, 2014년도 대학정보공시 기준으로 부산대학교 기성회비는 등록금의 81.5%를 차지하고 있다. 국고회계인 일반회계와 기성회비를 재원으로 하는 기성회회계를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부산대학교 총 예산액에서 기성회회계의 비중은 38~39% 정도이다. 그러나 일반회계의 75%가 인건비이고 나머지 25%도 기본적인 경비이므로, 실제적인 사업비는 대부분 기성회회계에서 편성되고 집행된다고 볼 수 있다. 부산대학교 캠퍼스재정기획과 김두찬 씨는 “현재 국가의 재정지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기성회비 징수는 불가피하다.”며 “기성회비가 징수되지 않으면 대학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기성회비는 주로 학교의 부족 시설의 보충과 확충, 학교 교직원 연구비 지원, 학교 운영이나 교육활동에 필요한 경비 지원에 쓰인다. 구체적으로 보면, ⓛ 시간강사․기성회직원․객원교수․환경미화원 등 인건비, ② 교원 연구역량 제고를 위한 각종 연구비 지원, ③ 학생 장학금 지급, 학생 자치활동(언론사 운영, 동아리 및 봉사활동 지원, 학생 복지 등) 및 해외 파견과 취업 지원, ④ 도서 구입, ⑤ 교양교육 등 각종 교육프로그램 운영, ⑥ 단과대학(원)의 실험실습비 및 운영비, 공공요금 납부, ⑦ 정보시스템 유지․보수, 각종 시설환경 확충 및 유지․보수 등에 사용되고 있다. 이에 대해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장 이승백 씨는 “국립대는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데 기성회비로 운영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국가의 재정 지원을 확대하지 않으면 국립대 운영은 점차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전히 책임을 회피하는 정부의 대안: 재정회계법


 기성회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국공립대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계속해서 책임을 개별 국립대학에 전가하고 있다. 

 기성회비 불법성 판결 이후 교육부가 대안으로 언급한 「재정회계법」은 기성회비를 수업료로 통합 징수하고, 일반회계와 기성회계를 통합해 교비회계를 설치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국립대학 재정운영의 자율성과 효율성 제고’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국립대학의 재정 운영만큼은 국립대학 법인처럼 만들겠다는 의도가 드러난다. 또한 이는 법률적 근거가 없는 기성회비를 합법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심지어 ‘2015 교육부 예산안’을 보면, 국립대학 재정회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할 것에 대비해 기성회비를 수업료에 통합 징수하고, 이를 국립대학 운영 경비로 지원하도록 했다.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내년 예산안을 편성한 것이다. 

 이로써 원고인단이 기성회비 반환 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국립대학교는 ‘교비회계’ 또는 ‘수업료’로 계속해서 기성회비를 징수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부산대학교 캠퍼스재정기획과 김두찬 씨는 “기성회비 징수에 관한 소송에서 패소한다면 판결 결과에 따라 기성회비를 반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성회비로 집행해 온 사업들을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할 수밖에 없죠.”라며 “대체법률안 제정과 교육부 정책방향에 따라 기성회비 문제에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Part2. 집행의 문제


학교의 무리수, 수익형 민자 사업


 앞서 말했듯이, 기성회비는 교육부 훈령과 대학별 기성회 규약의 적용을 받고 있기 때문에 정확히 말해서 기성회비 집행에 대한 법적인 제약은 없다. 부산대학교 캠퍼스재정기획과 김두찬 씨는 “기성회회계 예산은 재정위원회, 교무회의, 대학평의원회와 학부모 대표로 구성된 기성회이사회 심의를 거쳐 편성 및 운영되며, 대학 자체 감사 및 교육부, 감사원 감사 등을 통해 편성 및 집행이 감독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닌가 보다. 2006년 부산대학교는 정부의 빈약한 지원금과 등록금 동결로 인한 재정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BTO사업(수익형 민자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벌인 사업이 오히려 재정을 갉아먹고 있다. 


효원문화회관(현 NC백화점) ©김영진


 2006년 부산대는 민간 사업체(효원이앤씨)와 효원문화회관(현 NC백화점)을 BTO방식으로 유치하기로 계약했다. BTO방식은 효원이앤씨가 건물을 짓고 소유권은 부산대학교로 이전되지만, 관리 및 운영은 효원이앤씨가 맡게 되는 방식이다. 효원이앤씨는 금융기관에서 400억 원을 대출받아 사업을 시작했고, 2009년 2월 효원문화회관을 개장했다. 그러나 예상만큼 수익이 발생하지 않았고 효원이앤씨는 끝내 대출금과 이자를 갚지 못했다. 문제는 당시 효원이앤씨가 빌린 400억과 이자를 갚지 못하면 부산대학교 기성회비 회계에서 대신 지급하겠다는 계약 내용이다. 결국 지난해 2월 효원이앤씨 대신 부산대학교가 대출 원금 400억 원과 이자 36억 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이 제기되었다. 



Part3. 해결의 열쇠


기성회비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대학생 적어... 

 

 이러한 문제를 인식한 부산대학교 총학생회는 적극적으로 기성회비 반환 소송에 참여했다. 1차 기성회비 반환 소송의 항소심에서 부산대학교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한 원고인단은 정부를 대상으로 기성회비 반환을 청구하고 고등교육재정 지원을 요구했다. 1차 소송은 1·2심에서 원고인단이 승소했다. 이에 기성회가 상고해 3심을 앞두고 있다. 

 2차 기성회비 반환 청구소송은 각 국공립대 기성회와 정부를 피고로 하여 진행되었다. 승소할 경우 원고 1인당 1만원의 소송비용으로 약 2백만 원의 기성회비를 반환 받을 수 있다. 1차 소송의 판결에 따라 2차 소송의 판결도 정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대해 부산대학교 학생회장 이승백 씨는 “기성회비를 완전히 돌려받겠다는 것보다는 교내 학우들의 관심을 촉구하는 데 의미가 있다.”라고 밝혔다. 

 3차 기성회비 반환 청구소송은 부산대학교를 포함해 7개의 국·공립대가 준비 중이다. 3차 소송의 판결도 1차 소송의 판결에 따라 정해질 것으로 예측되며 2·3차 소송은 1차 소송이 종료된 후 진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1차 소송의 3심 판결이 지연되면서 학우들의 관심이 사그라들고 있다. 기성회비 반환 소송 때마다 총학생회가 중심이 되어 원고인단을 모집했지만, 원고인단의 수는 제자리 걸음이다. 



1차 소송에 비해 2차 소송은 1915명으로 조금 증가했지만 최근 진행된 3차 소송 참여 인원이 1710명으로 오히려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기성회비 문제는 전혀 쟁점화되지 않고 있다.   


우리 등록금 문제,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어떤 이는 어차피 사립대학교와 비교하면 훨씬 적은 돈으로 학교를 다니는 게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나 기성회비 문제는 ‘등록금을 얼마나 내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고등교육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문제다.

 국가는 「재정회계법」으로 국립대 재정지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다. 기성회비는 ‘교비회계’ 또는 ‘수업료’라는 이름으로 대체될 뿐이다. 이는 사실상 국립대의 재정 법인화를 야기한다. 따라서 국립대 재정은 공공성보다 시장경제의 논리에 따라 운영될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부산대학교 NC백화점이 있다. 그리고 이는 결국 국립대 학문의 발전을 저하시키게 된다.

 우리는 국회의원처럼 법안을 만들 수 없다. 학교처럼 재정확보를 위한 사업을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국회의원으로 하여금 법안을 만들도록 촉구할 수 있고, 학교의 무리한 사업을 저지할 수도 있다. 그런데 국립대학교라는 타이틀이 부끄러울 정도로 정부의 지원이 미비한 가운데 기성회비 문제에 대한 학우들의 참여 또한 부끄러운 수준이다. 기성회비 문제야 말로 대학생이 나서야할 문제이자, 대학생밖에 나설 사람이 없는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