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마음으로 교수연구동을 찾았다. 우리를 아꼈던 한 사람이 곁을 떠났다는 것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오랜 고민과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의 결정과 이별, 그리고 그 무게를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나는 아직은 어수룩한 사람이었다.
교수님께서 머무르던 그 곳엔 추모의 메시지가 담긴 많은 메모들과 국화꽃 몇 송이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진으로만 남은 교수님의 미소와 닮아 있던 은은한 오후의 햇살이 이상하리만큼 조용한 교수연구동을 채우고 있었다.
‘그 시간’ 속 교수님의 시선엔 어떤 것들이 담겼을까. 마지막 발걸음엔 어떤 감정과 기억이 맺혔을까. 떠나버린 한 사람의 감정과 생각에 차분히 공감하는 것. 그 사람의 시간과 내 시간을 겹쳐보는 것. 이것이 남겨진 사람으로서의 작은 정성이지 않을까.
그 누구보다 가까웠을 제자들의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마지막 그 순간을 함께하진 못했지만 오랜 시간동안 살을 맞대며 만들어나가고 지켜왔던, 모두가 하나였던 그 기억들이 교수님의 마지막을 함께 했으리라.
학생들의 모습을 뒤로 하고서 담담하게 서있는 학교를 바라보았다. 언제든 ‘함께’였던 그 공간. 떠나버린 한 사람의 기억은 학교를 지탱하는 하나의 기둥이 되어 서있었다. 그 속에서 싹틔웠던 감정들을 되새기며, 마지막 발걸음 속에서도 작은 웃음 정도는 남기시지 않았을까.
누군가에겐 평범했던 하루이자 다른 누군가에겐 조금은 특별했던 그 날의 학교와 하늘은 절제된 감정 속에서 ‘평범하게’ 차분했을 것이다. 약간의 아쉬움을 안고서, 하지만 ‘마지막’이라는 단어와 함께 더욱 빛났던 기억들을 안고서 담담하게 마지막 길을 떠나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어서 故 고현철 교수님의 시, 평사리 송사리가 이어집니다.
평사리 송사리 / 고현철
마음도 머리도
아주 무게를 더할 때
혼자 찾은
고향 같은 하동 평사리.
내가 발 딛고 있는, 토지
서희는 어떻게 견뎌왔던가.
힘든 세월
비틀어진 나무를 본다.
바람 찬 겨울일수록
잔잔한 개울
흑싸리 홍싸리 화투패처럼
쉽사리 휩쓸리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살얼음 얼음물 속
흙자갈 속을
자갈자갈 헤치며 떠다니는
평사리 송사리 같은 것.
내 어찌 여기서 끊겠는가.
그동안 어렵사리 길들여 온
지겨운 이 길을
흙먼지 날리는 이 길을
헤엄쳐 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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